인과2

카테고리 없음 2013. 7. 12. 20:48

2강 고대 그리스의 과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가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한 후 그의 방식을 이어받은 많은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발달해 온 그리스 자연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 와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를 비롯한 자기 시대 이전의 모든 철학자들의 이론을 검토하고 비판한 다음 경험에 입각한 자기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내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관된 이론적 기초 위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헬레니즘 시대와 중세에 유럽과 이슬람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1 플라톤

 

 

플라톤 (Platon, 기원전 429? - 347)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이 대부분 우주와 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 달리, 철학자의 관심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로 바꾸었다. 관심을 높은 하늘로부터 낮은 땅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플라톤도 스승의 영향을 받아 자연에 관한 연구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스승과는 달리 수학과 천문학의 연구가 본질(이데아, idea, form)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그가 세운 학교인 아카데미아(Akademia)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씌어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수학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플라톤은 종교적 전통에 속했던 철학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세계에는 신이 먼저 존재했으며 신이 원질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세계를 우리 감각에 의해서 지각되는 현상의 세계와 본질의 세계로 나누었다. 본질의 세계는 영원히 존재하고 불변이며 보이는 세계는 본질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를 그림자와 같이 헛된 것으로 보았다는 것에서 감각을 통해서 우리가 지각하는 변화나 다양성이 환상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사고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으며, 변하지 않는 본질의 세계는 감각의 세계 저편에 따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파르메니데스의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보이는 현실 세계는 본질 세계를 본떠서 창조되었고, 그것은 엠페도클레스의 4 원소 즉 흙, , 공기, 불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본질의 세계와 기하학을 중요시했던 플라톤은 이 4 원소의 본질적 형태가 단단한 정다면체이며, 흙은 정육면체, 물은 정이십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불은 정사면체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물질이론 중에서 그 이전에 활동했던 철학자들의 주장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주장 두가지는 그가 4 원소를 가하학적 입체로 보았다는 점과 이 원소들이 서로 변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4원소에 대응시켰던 정다면체 중에서 정이십면체, 정팔면체, 정사면체는 정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육면체는 정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사각형도 삼각형으로 나눌 수 있으므로, 이들 다면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삼각형이라는 최소 단위로 나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이 삼각형이 따로따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결합하면 하나의 정다면체가 다른 정다면체로 바뀔 수 있으며, 따라서 사원소들이 서로 변환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플라톤은 우주는 완전한 공의 형태를 띠고 있고, 그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지구는 그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스 시대의 물 위에 떠있는 원반형의 지구라는 생각에서 크게 발전한 것인데, 이렇게 공모양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는 둥근 지구라는 생각을 가장 처음으로 분명하게 내놓은 사람은 플라톤일 것이다. 그는 지구 주위는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항성 등이 붙어 있는 천구들이 둘러싸고 있고, 이 천구들이 회전운동을 한다고 보았는데, 이 천구(天球)들의 반지름은 수학적인 조화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달의 천구, 수성의 천구, 금성의 천구, 태양의 천구까지의 반지름이 무질서한 비가 아니라 1 : 2 : 3 이나 2 : 4 : 6 같은 조화로운 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플라톤이 수학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는 조화와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과 상통하는 것으로서 르네상스기에 와서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같은 자연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2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플라톤의 수제자였다. 그러나 플라톤이 죽은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학교를 떠났고 스승 플라톤을 모든 면에서 비판하고 부정했지만, 그의 학문 곳곳에 스며 있는 스승의 영향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연구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수행했다는 점에서 경험의 세계를 경시하고, 본질의 세계만이 진정한 세계이고, 이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학문인 수학과 천문학만을 중시했던 스승 플라톤과 크게 대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당시에 그리스와 근동을 정복해서 큰 나라를 세운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의 시의였다. 당연히 그는 당시의 관행대로 어려서부터 의학수업을 받았다. 의학이란 경험과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험에 입각한 수업을 받았던 것이다. 그후 아리스토텔레스는 13세 경부터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입학해서 거의 이십년간을 그곳에서 공부했다.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종종 플라톤의 가르침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스승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공개적인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348년 플라톤이 죽고 난 후 플라톤의 조카가 아카데미아 교장이 되자 이에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수학에 너무 치우치자 이를 비판하고 아카데미아와 아테네를 떠나고 말았다. 그후 아리스토텔레스는 13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플라톤과 그의 제자들이 매우 경시했던 생물학 연구에 쏟았다. 기원전 334년에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아카데미아와 겨룰 만한 뤼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그후 수백년 동안 존속하면서 그리스와 헬레니즘 과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23년에 다시 아테네를 떠났으며,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떴다.

 

 

2.3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학문 분야를 연구했고, 그 각 분야를 자기가 세운 기본 원리와 논리에 입각해서 상당히 체계화했다. 이 점은 그의 학문이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고 공통의 기초 위에서 서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세계의 영속성이라든가, 영혼은 육체와 함께 사멸한다는 것과 같이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는 생각을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거의 이천년 동안 서양의 학문을 지배했던 것이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완전히 부수어버렸던 근대 과학혁명의 완결자라 할 수 있는 뉴튼이 대학을 다닐 때인 17 세기 중엽에도 아리스텔레스의 학문은 유럽 대학의 주된 교과목이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그의 영향이 얼마나 오래 갔는지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은 크게 물리과학과 생물학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물리과학은 다시 물질이론, 운동이론, 우주론으로 갈라지는데, 이것들은 모두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과학은 엘레아 학파의 변화의 문제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서 시작된다.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존재의 불변성을 인정했지만,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로서 나온 것이 잠재태(potentiality)와 현실태(actuality)의 구분이었다. 그에 의하면 존재는 잠재태와 현실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속에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비존재(또는 ,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잠재태로부터 나온다.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를 환상에 불과하다고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존재를 무에서 생긴 것으로 보지 않고 변화하기 전의 존재 속에 들어 있는 잠재태가 현실태로 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존재의 잠재성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도토리는 자라서 떡갈나무가 되는데, 이때 떡갈나무는 도토리 속에 들어 있는 떡갈나무의 잠재태가 현실태로 된 것이다. 그렇지만 도토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즉 잠재적으로는 떡갈나무지만, 다른 의미에서 즉 현실적으로는 떡갈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도토리 속의 잠재태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변화를 이 잠재태의 현실화로 설명했다. 그는 물체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네 가지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 원인은 1. 변화 후에도 남는 물질(질료인), 2. 변화 중에 현실로서 나타나는 형상(형상인), 3.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작용인), 그리고 4. 변화의 목적(목적인)이다. 그의 물질이론, 우주론, 생물학은 모두 잠재태의 현실화와 네 가지 원인에 대한 규명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설을 받아들여서 세계의 근원물질은 흙, , 공기, 불이라고 보았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사원소가 변하지 않는 기본 뿌리라고 말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원소 외에 네 가지 성질을 도입하여 기본 원소들은 각각 그 중에서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성질 중 한가지가 변하면 다른 원소로 된다고 주장했다. 네 성질은 뜨거움, 차가움, 습함, 건조함인데, 흙은 차갑고 건조하고, 물은 차갑고 습하고, 공기는 뜨겁고 습하며, 불은 뜨겁고 건조하다. 그러므로 불의 성질 중 건조한 것이 습한 것으로 바뀌면 불이란 원소는 공기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네 원소는 끊임 없이 변환하고 있지만 변환 과정은 평형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상 세계의 사원소의 양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원소설을 별다른 검토 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던 그는 사원소가 모든 물체의 근본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정교하게 추론해내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는 물체는 감각을 통해서 인지되며 이때 감각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촉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물체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촉각이 다른 데서 오는데, 이러한 차이가 유발되는 이유는 물체가 가진 여러가지 성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성질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서로 작용했을 때 상대방을 삼키거나 삼켜질 수 있는 차가움-뜨거움, 습함-건조함이라는 두개씩 서로 대립하는 네가지 성질을 들었다. 그는 무거움과 가벼움, 거칠음과 매끈함, 두꺼움과 얇음도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정반대되는 성질이지만 이것들은 차가운 것이 뜨거운 것을 삼키고 습한 것이 건조한 것을 삼키듯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네가지 성질은 둘씩 결합해서 짝을 이룰 수 있다. 이때 모두 여섯개의 짝이 성립하지만 차가움-뜨거움, 습함-건조함 두 짝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서 결합이 불가능하므로 네개의 짝만 남는다. 이것들은 뜨거움-건조함, 뜨거움-습함, 차가움-습함, 차가움-건조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네개의 성질짝이 우리 경험세계의 흙, , 공기, 불 네가지 원소와 아주 잘 결합한다고 보았다. 즉 불은 뜨겁고 건조하고, 공기는 뜨겁고 습하고(공기는 일종의 증기인 것이다), 물은 차갑고 습하며, 흙은 차갑고 건조하다. 바로 이러한 추론 과정을 거쳐서 사원소가 근본 물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원소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성질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근본물질(materia prima)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 즉 위에서 든 네가지 성질 중에서 두가지 성질이 주어지면 어느 한 원소의 형태를 갖게 되는 물질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본물질이 형체 없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더이상의 명확한 언급은 하지 앟았다.

원소가 서로 변환한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헬레니즘 시대에 물질의 변환 가능성을 믿고 천한 금속을 가지고 귀한 금속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연금술사들의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이 세계에 매우 다양한 물체가 존재하는 이유, 즉 물체가 서로 다른 이유를 사 원소의 비율의 차이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서 단단한 금속은 녹아서 물처럼 될 수 있고 높은 온도에서는 타기도 하므로 사원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단단한 성질을 가진 흙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금속으로 존재하며, 나무에도 사원소가 모두 들어 있지만 금속보다는 공기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나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그러나 전적으로 정성적인 것으로 남았으며, 정량적인 것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원소가 각각 고유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제 자리를 찾아 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에는 흙이 있고, 그것은 흙보다 가벼운 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물은 공기가 그리고 공기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불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물체는 불의 고유한 위치인 위로 올라가려 하고, 흙이 많이 들어있는 물체는 밑으로 내려 오려고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자기 위치를 찾아가려는 경향 때문에 일어나는 운동을 자연운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운동은 상승운동과 낙하운동밖에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섯번째 원소를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서 그는 그 뒤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오 원소의 도입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모든 별들이 끊임 없이 등속 원운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관찰하기에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항상성을 지닌 운동을 자연스럽고 완전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하늘도 사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 하늘에서도 상승운동과 하강운동만이 자연스러운 운동이 되어 원운동은 자연운동에 반대되는 강제운동이 되고 만다. 이것은 하늘과 원운동을 완전한 것으로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그는 하늘은 다섯번째 원소인 아이테르 (aither)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아이테르는 완전한 원소로서 변화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자연스러운 운동인 원운동을 하고 있다. 이로써 사원소로 구성되어 있는 달아래의 세계와 아이테르로 차 있는 달너머 세계가 뚜렷하게 갈라진다. 달아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운동과 강제 운동, 변화, 생성, 소멸이 지배한다. 반면에 달너머 세계는 자연 운동인 완전한 원운동만 있을 뿐 그 외에는 변화가 없는 완전한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물리현상과 화학 현상, 예를들면 번개, 천둥, 포도주가 시어지는 현상, 얼음이 어는 일 등을 모두 그의 사원소설로 설명했는데, 그것은 일관성이 있고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공기 중에서는 나무토막이 납 조각보다 더 무겁지만, 물 속에서는 납조각보다 무거운 나무토막이 물 위에 뜨고 납조각은 가라앉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흙은 절대적으로 무겁고 물은 공기보다 무거우며, 공기와 물은 각각 공기와 물 속에서 무게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 공기가 가득 든 공은 공기가 들어 있지 않은 공보다 더 무겁다. 그런데 나무는 사원소 중에서 공기를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고, 납은 흙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나무토막은 공기 중에서는 납보다 무겁지만 물 속에 들어가면 공기가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물 위에 뜨게 된다. 반면에 납은 물보다 무거운 흙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물 속에 가라앉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아래 세계의 운동을 자연운동과 강제운동으로 구분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므로, 이 두가지 운동에도 그것이 일어나도록 하는 원인이 있다. 자연운동의 원인은 우주 속의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는 물체 내부의 고유한 경향이다. 강제운동은 항상 외부에서 움직여주는 존재, 즉 외부의 동인이 끊임없이 힘을 공급해 주어야만 일어난다. 그는 자연운동 중에서는 낙하운동 그리고 강제운동 중에서는 투사체의 운동에 관해서 그후 많은 논쟁을 일으킨 이론을 만들었다. 이 이론들은 중세에 일부 수정되기도 했지만 과학혁명에 의해서 새로운 역학이 나올 때까지 운동을 연구하는 자연철학자들에게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낙하 운동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낙하하는 물체는 무게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매질의 밀도가 작으면 작을수록 빨리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위는 작은 돌덩어리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같은 물체라도 물속보다는 공기 중에서 더 빨리 떨어지는 것이다. 강제 운동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특별히 투사체 운동에 관한 복잡한 이론을 만든 이유는 그것이 공중에서 움직일 때 그것을 움직이는 동인(작용인)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이론을 포기하지 않고 투사체 운동의 동인을 공기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외부의 동인, 예를들면 손과의 접촉이 없어진 뒤에도 계속 올라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초에 손은 물체를 움직일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공기에다 두가지 힘을 준다. 하나는 물체를 미는 힘이고, 또 하나는 인접한 공기에 이 미는 힘을 전달하는 힘이다. 그러면 물체가 손을 떠난 직후 공기는 물체를 밀고 그와 동시에 바로 다음 장소에 있는 공기에다 위의 두가지 힘을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체는 손을 떠난 뒤에도 공기의 미는 힘에 의해서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공기가 미는 힘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는데, 이 힘이 영이 되면 물체는 자유낙하 운동을 하면서 떨어진다. 우리는 투사체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르면 투사체는 처음에는 직선형태로 올라가다가 낙하운동을 하며 떨어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이유에서 진공을 부정했는데, 그의 운동이론에서도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진공이 존재한다면 진공에서 매질의 밀도는 영이기 때문에 낙하하는 물체는 무한의 속도를 가질 것이며, 투사체는 동인과의 접촉이 없어진 뒤에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상황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으며 그러므로 진공을 부정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전의 자연철학자들과 플라톤의 견해를 비판하고 종합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놓여 있는 우주 체계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 체계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경험에 잘 들어맞고 성경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17 세기에 천문학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일반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구가 운동한다는 생각을 도입해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우주 체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서 피타고라스의 제자인 필롤라오스 (Philolaos)는 이미 기원전 6 세기 경에 우주의 중심에는 불이 놓여 있고 그 주위를 지구, , 태양, 다섯개의 행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별들이 붙어 있는 항성천구가 차례대로 돌고 있는 우주 체계를 고안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에 입각해서 지구중심의 우주 체계를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원소설의 논리적 결과로서 지구가 중심에 놓여 있는 우주 체계를 제시했다. 즉 지구는 흙의 본래 위치인 우주의 중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중심에 있는 우주 체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지구가 어떤 강제 운동에 의해서 달 근처로 옮겨진다고 해도 흙은 지구를 향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래의 위치인 우주의 중심으로 떨어질 것이고, 이 때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를 간단하게 묘사하면 그림과 같이 중심인 지구를 아홉 개의 구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가 된다. 여기서 보면 가장 안쪽에 달의 천구가 있고 그 다음이 수성과 금성, 태양의 천구, 그 다음에 우리가 외행성이라고 부르는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마지막에 항성 천구가 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은 항성천구를 돌려주는 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과학은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세워졌고 따라서 어느 정도 통일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변적이고 독단적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정확한 관찰에 입각하여 기술된 매우 근대적인 것이고, 생물학의 많은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는 다윈 이전에 나온 생물학자 중에서 생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아를 떠난 후 많은 시간을 생물학 연구에 바쳤다. 이렇게 생물학 연구를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어렸을 때 의학공부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생물체와 그것의 기관들에서 그의 4원인 중 형상의 역할과 최종 원인에 관한 증거를 아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동식물을 수집하고 관찰하고 묘사했으며, 내장 기관을 조사하기 위해서 스스로 동물을 해부하기도 했다. 그는 약 500 종 이상의 동물에 관해 묘사했고, 그 스스로 50가지 형태의 동물을 해부했다. 당시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 직접 동물 해부를 했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생물학 연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같이 많은 생물에 관한 관찰과 해부를 바탕으로 발생학, 생태학, 생식, 분류학 등에 관해 풍부한 연구를 남겼다. 그는 고래와 물고기, 새와 박쥐가 다른 종류라는 것을 밝혔으며, 오징어의 양성생식을 기술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무척추 동물 분류는 근대 분류학을 체계화한 린네의 분류보다 더 뛰어난 일면을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