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오 2013. 7. 12. 21:02

인간과과학 제7

 

다윈의 진화이론과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이제 생물학마저 기계론적 과학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멘델은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향의 과학에 대한 반발도 없지는 않았다. 기계론적 과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은 어제 오늘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18, 19세기에 낭만주의와 독일 자연철학이 등장하여 기계론으로부터 유기체적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 낭만주의적 반동에 가담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였다. 물론 괴테는 낭만주의가 아니라 독일 계몽사조의 최고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괴테는 과학 이외의 부문에서는 대단히 계몽적이었지만 과학에서는 뉴턴적인 냉혹한 과학을 따뜻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그의 이러한 의도가 낭만주의적 과학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그는 생물학 연구에서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업적은 근대과학에서 보면 지독한 시대착오인 색채에 관한 이론이었다. 이것은 뉴턴적 자연철학 전체에 대한 반론이었다. 이로써 그는 기계론적 자연을 유기체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괴테의 뉴턴 과학에 대한 적대감은 우주를 연속적인 것으로 본 스토아학파가 원자론을 신봉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 가졌던 적대감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원자, 입자, 프리즘으로 분해된 광선과 같은 고정적.분절적인 자연에 반대하여 생물학적인 연속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괴테는 뉴턴의 오류는 실험과 추상화에 기초한 그의 방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뉴턴의 방법은 자연을 수학을 사용하여 추상화하고, 망원경, 프리즘, 거울 등의 도구를 들이대어 자연을 조작하고 괴롭힘으로써 결국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앗아가고 만다. 그는 고대 이래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고 하는 자연의 근원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나왔다.

 

자연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으려는 괴테의 생물학적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이라는 학파를 낳는 데 영향을 미쳤고, 자연철학은 독일 과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이기는 했지만, 자연철학적 방법을 따른 학자들 중에 간혹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9세기의 많은 독일 과학자들은 알게모르게 자연철학에 침윤당했고, 특히 독일 생물학의 연구 스타일은 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실제의 과학적 성과가 별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19세기 말이 되면 자연철학은 기계론적 과학에 완전히 패퇴당하고 만다.

 

 

자연철학을 일축한 근대과학은 19세기 말에 기술과 결합하기 시작함으로써 베이컨이 소망한대로 자연을 인간에게 완벽하게 굴복시킬 채비를 하게 된다. 19세기에 물리학과 화학에 관한 지식은 급속히 불어났고, 이것들을 하나의 학문분과 속에 정리하는 작업이 계속되었으며,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교류가 서서히 활기를 띠어갔다. 과학자들은 기술에의 응용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기술자들은 과학의 방법이나 지식을 기술 혁신에 이용하려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최초로 나타난 분야는 무기화학 및 유기화학과 전기 분야였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73)는 식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영양 물질로서 무기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여 무기질 비료를 발명했고, 유기화학자들은 유기합성 및 분석 중에 발견된 유기물질을 인공 염료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염료 산업에 혁신을 일으켰다. 19세기 중엽에 이루어진 전기 현상에 관한 많은 과학적 발견들은 발전기, 전동기, 조명이라는 실제적 결과로 나타났다. 기계제작이나 건축 같은 기술 분야에서는 과학적인 방법이 도입되어 공학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과학에서 수행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연구가 수행되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의 이러한 결합은 실험을 통해 자연을 조작하는 특성을 지닌 근대과학의 속성상 불가피한 것이었다. 근대과학이 기술과 다름없다는 것은 현재 모든 과학에서 행해지는 실험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니 실험을 바로 기술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근대과학은 기술을 포함하고 있고 이 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과학은 실험을 한다. 과학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화석만을 연구하는 고생물학,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 하는 천체물리학, 궁극적 입자를 찾으려 하는 입자물리학도 모두 실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입자물리학은 거대한 가속기를 통해서 입자들을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고, 우주의 기원도 많은 이론이 존재하지만 이들 이론도 궁극적으로는 초기의 우주 상태를 소규모로 실험실에 만들어놓고 실험을 해야만 증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이 기술에 응용되고 더 나아가서 현 시점에서 과학과 기술이 구분되지 않는 활동으로 화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이 현대에 들어와서야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근대과학이 성립한 지 200년이 지난 이제 과학 지식이 크게 축적되어 전반적인 현상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은 기술과 구분되기 어려운 것이 되었고, 모든 과학적 발견은 기술적 응용에 속박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로써 유럽에서 태어난 근대과학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물적인 조건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과학이 기술적 응용과 불가분리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났지만, 많은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은 순수하게과학연구만을 한다고 생각하며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의 연구 중 가장 위대한 성취로 꼽히는 것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이다. 20세기 현대과학의 혁명, 특히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상대성이론 못지않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론이 있다. 바로 양자이론이다. 양자이론은 미시세계의 사물들이 거시세계의 그것과 달리 불연속적이고 확률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고 주장함으로써, 3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뉴턴-패러다임을 부정하였다. 뉴턴은 자연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 즉 인과적이고 결정론적인 관계들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뉴턴이 보기에 이 우주는 신의 완벽한 창조물로서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존재자이며, 따라서 자연법칙에 의해 언제나 정확하고 완벽하게 예측될 수 있다. 또한 뉴턴은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쓰여 진 교과서로 보고 이 같은 결정론적 우주를 수학(언어)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누구도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의 완전함, 그 신이 창조한 우주의 결정론적 속성, 그리고 수학을 통해 이 우주를 완전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뉴턴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양자이론은 이러한 믿음들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우선 양자개념부터 살펴보자. 고전적인 연속성 대신 불연속성이 강조된다. 양자(量子) 개념은 빛 에너지가 고전적인 경우처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어떤 연속체가 아니라, 띄엄띄엄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 양자로 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빛의 복사현상에 관한 실험결과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막스 플랑크는 이 같은 양자개념을 가정하였는데, 이것이 단지 수학적 기교일 뿐 물리적 의미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와는 달리 1905년 광양자(光量子) 가설을 통해 빛이 실재하는 입자임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우연 혹은 확률과 예측불가능성이 이 우주를 지배하게 된다. 즉 비록 우리가 현재의 우주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의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 예측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자이론이 물리 현상 곧 사물의 운동을 서술하는 방법은 고전역학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하나의 사고실험 예를 통해 비유적으로 살펴보자. 지킬박사와 하이드(19세기말 스코틀란드 작가 스티븐슨의 작품)의 예에서 주인공 X는 어떤 때는 치킬박사, 어떤 때는 괴물 하이드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은 고전역학의 관점(우리의 일상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X는 어떤 물리적 상황 하에서 지킬박사에서 하이드, 혹은 하이드에서 치킬박사로 변신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순간에는 지킬박사아니면 하이드둘 가운데 하나의 상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해 둘 모두가 어떤 순간에 동시에 X의 상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이론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 양자이론은 X지킬박사하이드가 동시에 참여하여 구성한 어떤 상태’(양자이론에서는 이를 중첩상태라 부른다)에 존재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허용한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가령 현재의 시각 t)X지킬박사의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가령 미래의 시각 t')X지킬박사하이드둘 중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두 상태가 동시에 참여하는 어떤 상태’(중첩상태)에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중첩원리라고 부른다. 양자이론이 왜 이런 특이한 방식으로 자연을 서술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할 경우 고전역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다수의 현상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지적할 점이 또 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즉 미래의 시각 t'에서) X가 이론적으로 중첩상태에 있다고 할 때, 그 순간 누군가가 직접 X를 목격(관측)하게 된다면 그 때 X지킬박사아니면 하이드둘 중의 하나의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관측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실제 경험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그러한 중첩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우리는 양자이론이 미래의 현상을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자이론은 미래의 발생 가능한 현상에 대해 확률적인 예측만을 제공해 줄 뿐이다. 바로 여기서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하더라도, 미래의 상태에 대해서는 오직 확률적인 예측만이 가능하다는 비결정론적 상황이 발생한다. 더 이상 결정론은 지지받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고전역학에서는 운동하는 입자에 대해 어떤 시각에서건 그것의 위치(x)와 그때의 운동량(p, 혹은 속도)의 값을 동시에 결정할 수 있다. 즉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과의 경우 매 순간마다, 사과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측정)할 수 있다. 만약 위치나 운동량에 대한 측정값이 불확정적으로 (즉 오차 범위를 갖는 값의 분포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측정기술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여겼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입자의 위치 x와 운동량 p를 동시에 확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에너지와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확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혹은 확정적으로) 정하려고 하면, 운동량의 불확정도가 무한히 값이 커지게 되고, 그 결과 운동량의 값이 확정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하려 하면, 위치가 불확정해진다. 그래서 입자의 위치를 확정하면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입자의 운동량을 확정하면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27년 하이젠베르크가 정식화한 불확정성원리다. 이 원리의 기본 골격은 고전적인 입자성이 더 이상 양자역학에서는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입자의 물리량에 대한 측정결과가 반드시 확정된 값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값들의 확률적 분포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189516세의 아인슈타인은 빛을 타고 달리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었지만 10년이 지난 후인 1905년 이 사고실험은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특수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두가지 원리는 광속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이다. 광속불변의 원리는 빛의 속도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빛과 평행한 방향으로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우리에게 보이는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의 길이와 공간의 길이가 절대적이라는 , 즉 고정되어 있다는 믿음도 깨버렸다.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물질이 에너지와 등가라고 하는 법칙도 발견했다. 이것이 유명한 E=mc(2제곱) 이라는 식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고, 따라서 응용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가장 순수한것으로 남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이나 보어,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락, 보른 등 양자역학을 만들어낸 주역들은 사실 깊은 정신적 노력과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이론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이론의 응용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지적인 유희, 지적인 만족의 차원에서 과학 연구를 수행했고, 고도의 사고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만족을 얻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그리고 이들의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 기술과의 연관성이나 응용가능성이 나오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차대전을 겪으면서 이 순수한과학들도 군사기술 속에 편입되었고, 지금까지 과학 응용의 결과로 나온 무기 중 최악의 결과를 내놓고 말았다. 두 이론은 원자폭탄을 내놓음으로써 과학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고 자처하던 과학이 가장 최악의 살상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원자폭탄의 개발은 과학활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과학의 순수성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고, 과학연구를 거대화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거대연구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당시에 시험되었던 바와 같이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된 연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원자폭탄 개발의 성공은 거대연구의 위력을 보여준 셈이었고, 따라서 세계 곳곳에 거대 연구기관들이 설립되어 과학연구의 거대화를 촉진했다. 거대연구를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예산, 조직, 행정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로부터 과학이 정부, 산업체, 군대와 손잡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생겨났다.

 

20세기의 소위 첨단과학은 대부분 거대 연구체제 하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연구 대상은 극대로부터 극미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거대한 망원경, 우주 로케트, 거대 컴퓨터를 동원하여 거대한 우주를 탐구하고, 거대 가속기를 이용하여 원자 이하의 궁극 입자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과 생물학은 크기의 차원을 가지고 비교할 때 그 중간쯤 되는 것을 다룬다. 거대연구가 아니라 해도 현대의 과학은 거의 모두 정부나 산업체의 지원을 받는 집단적인 성격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과학연구는 정부의 정책이나 경제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과학자의 독립성이나 과학의 순수성이란 말은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 시대에나 들어맞는 것이 되었다.

 

과학은 기술적 응용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아직도 과학자들 중에는 자연의 궁극적 법칙을 발견하려는 스스로 순수한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이들이 목표로 하는 궁극의 법칙이 발견된다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탐구대상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어 인간이 우주의 생성과 종말, 우주만물의 운행을 떠받쳐 주는 근본 비밀을 알아버리면 과학은 종말을 맞는 것일까? 그러면 물리적 세계에서, 아니 물리적 세계로 환원되어버린 생물 세계에서조차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연구할 것이 남지 않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세부적, 응용 지식의 연구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융성할 것이다.

 

기계론적인 거대 과학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그것이 전일적인자연의 유기체적 질서를 존중하는 과학으로 대치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20세기 말에 생태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현존 과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 과학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다. 새로운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과학이 남성적, 기계론적, 입자적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과학을 부드럽게 여성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자연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조작하는 기계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유기체적인 것으로 보는 전일적인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과학은 신과학이라고 통칭할 수 있지만, 그들도 프리초프 카프라에서 제임스 러브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카프라는 동양사상에서 새로운 과학 수립의 실마리를 끌어내고, 러브록은 현대과학의 성취와 방법은 부정하지 않으면서 독립된 과학자의 과학을 주장하지만, 이들은 모두 현존 과학을 대신할 새로운 과학을 모색한다. 이들과 같이 과학의 혁신을 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을 얻고 성공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19세기의 자연철학처럼 거기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독일의 자연철학이나 신과학은 모두 자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연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정신적 피폐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과학은 생태위기로 인한 인간의 사멸 가능성을 앞에 두고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연철학이 나왔을 때의 유럽은 진보에 대한 신념으로 차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진보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점차 커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회의 속에서도 인공생명, 생명공학, 나노기술, 컴퓨터 과학, 정보과학 등의 첨단 과학들은 계속해서 자기 증식을 해갈 것이고, 자본과 결합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갈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과학은 20세기의 거대과학과는 다른 분산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아주 커다란 형태를 지닌 위협적인 것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들이 현대의 생태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새 과학에 대한 갈구도 커질 것이다.